펜션예약해외여행국내여행
당진군의 인터넷 정보센터! 당진넷입니다.
 
 
 
서산시의 인터넷 정보센터! 서산넷입니다.
 
<솔뫼성지 - 김대건 신부 >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안드레안 김대건 신부가 조선 순조 21년(1821)8월 21일 출생한 곳으로 국내 제1의 카톨릭 성지로서 가장 명성이 높은 곳이며, 이곳은 김대건 신부의 순교정신을 추모하고 카톨릭 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전국에서 많은 카톨릭 신자는 물론 순례객이 찾아와 기도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1984년 5월 6일 한국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내한한 교황 요한바오로 2세로부터 성인으로 시성된 후 전세계 카톨릭 교회의 공경의 대상이 됨에 따라 역사적, 종교적으로 중요한 문화유적이다.

<명칭유래>

충남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에 자리한 "솔뫼"는 소나무 숲으로 덮인 산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 내포(內浦)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내포는 남으로는 광천의 오당진을, 서북으로는 덕산의 가야산을, 서로는 큰 바다를, 북으로는 경기도 해읍(海邑)과 아산만을 경계로 하면서 서해 바다가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온 평야지대이다. 내포의 한복판에는 삽교천이 흐르고 있다. 삽교천은 선사시대부터 바다를 통하여 건네지는 문화를 내륙으로 전하는 출입문의 구실을 하였다. 삽교천에 인접해 있는 솔뫼는 일찍부터 외국 문물을 접하였다. 그래서 이곳에 천주교 신앙이 전하여진 것은 육로를 통하여 전하여진 이승훈(1784년) 이전으로 추측되며, 또한 한국 천주교 초창기에 이곳 내포 출신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전국으로 흩어져 신앙을 전하고 순교를 하는 굳은 신앙의 모범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솔뫼 출생의 대표적 순교자는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다. 솔뫼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그 탄생지를 유적으로 꾸며놓은 곳이다.
<형성배경과 발전>  
<김대건신부>
김대건 신부님의 집안에서 천주교를 받아들이게 된 것은 이존창(루도비코 공사가)의 전교활동 덕분이었다. 증조부 김진후가 면천군수로 재직시에 이존창에게 성교를 접하고 이내 입교하여 벼슬을 버리고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그후 신해박해와 신유박해때 옥에 갇히고 귀양을 간 김진후는 귀양에서 돌아오고 다시 붙잡혀 해미감영으로 갇히게 된다. 결국 그는 10년동안 옥에서 생활하다 순교하였다. 김진후의 순교로부터 집안의 순교가 이어졌다. 신부님의 할아버지인 김한현(안드레아)는 을해박해가 일어나자 경상도의 영양에서 체포되어 1816년 대구에서 참수당하였다. 그는 아버지의 순교를 보고 세상의 모든 것에서 욕심을 버리고 덕을 쌓기 시작했다. 경상도 안동의 우련밭이라는 산골짜기로 들어가 17년간을 수련하며 살았다. 을해년 4월 23일 안동의 포졸들에게 잡히어 사형선고를 받아 1816년 12월 26일 포도청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김대건 신부님의 아버지인 성 김제준(이냐시오)는 그의 아들 김대건을 데리고 서울의 청파동에서 한덕골로 이주하며 후에 다시 골배마실에 정착한다. 성 김제준도 신해박해가 일어나자 서소문 밖 순교지에서 참수당한다. 이렇게 김대건 신부님의 집안은 4대에 걸친 순교자를 낳았고 그중 두명이 성인의 품에 오르는 영광을 얻는 집안이 되었다. 솔뫼성지 또한 그런 그들과 함께 세월을 보낸 장본인이다.
 
솔뫼 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순교 100주년을 맞은 1946년에 성역화 사업이 시작돼 기념비를 세웠고 생가 터를 매입했으며 성인의 동상과 탑이 건립되었다. 탄생 장소와 생가 터에는 아직도 300여년의 연륜을 지닌 소나무들이 무성하고 오른편 숲속에는 김 신부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솔뫼의 역사를 굽어 보았던 소나무들이 30여 그루나 남아있다. 그리고 그밑으로 있는 우물터에는 아직도 지하수가 솟아나고 있다.
 
 
서산시의 인터넷 정보센터! 서산넷입니다.
서산시 바로가기
홍성군 바로가기
예산군 바로가기
보령시 바로가기
태안군 바로가기
 
 
 
 
 
 
 
 
충남 서산시 동문동 261-1 3F   대표전화번호 041-666-2882
Copyright 2001~2006 (당진넷운영자)DAINTEC All right reserved.